헌신의 심리학적 정의

헌신(Commitment)은 관계 심리학의 중핵을 이루는 개념으로, 동반자 관계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려는 심리적 결속과 의지를 가리킨다. Caryl Rusbult 가 1980 년에 제시한 투자 모델(Investment Model)은 헌신을 설명하는 이론적 틀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크다. 이 모델에서 헌신은 세 가지 요인의 함수로 결정된다. (1) 만족도(Satisfaction Level): 관계에서 얻는 보상이 비용을 넘어서는 정도, (2) 대안의 질(Quality of Alternatives): 현재의 관계 이외의 선택지, 곧 다른 상대나 혼자 지내는 삶이 지니는 매력의 크기, (3) 투자량(Investment Size): 시간, 감정, 함께 쌓은 재산, 사회적 관계망처럼 그 관계에 들인 자원의 규모. 만족도가 높고 대안의 질이 낮으며 투자량이 클수록 헌신은 강해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헌신이 만족도와 독립된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만족도가 낮더라도 투자량이 크면 헌신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

헌신의 유형과 기능

헌신에는 질적으로 서로 다른 여러 종류가 있다. Johnson 은 1991 년에 헌신을 세 가지로 구분했다. (1) 개인적 헌신(Personal Commitment): 상대에 대한 애정과 관계를 이어 가고 싶다는 내재적 동기, (2) 도덕적 헌신(Moral Commitment): 혼인의 약속이나 도덕적 신념에서 비롯되는 의무감, (3) 구조적 헌신(Structural Commitment): 헤어질 때 드는 비용, 곧 경제적 손실과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주위의 압력 때문에 생기는 외재적 구속. 건강한 관계에서는 개인적 헌신이 주된 동기가 되지만, 힘든 시기에는 도덕적 헌신과 구조적 헌신이 관계를 붙드는 안전망으로 작동한다. 기능적인 측면에서 헌신은 관계 유지 행동(Relationship Maintenance Behaviors)을 촉진한다. 헌신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관계를 위해 양보하는 희생, 매력적인 다른 상대를 의식적으로 멀리하는 대안 폄하, 상대의 결점을 받아들이는 용인 같은 행동을 스스로 실천한다.

헌신과 궁합 진단

헌신은 초기의 매력이나 성격의 일치와는 다른 차원에서 관계의 향방을 가른다. 성격의 궁합이 좋아도 헌신하려는 의지가 약하면 관계는 유지되지 않는다. 반대로 성격의 마찰이 있어도 헌신이 강하면 서로 적응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다. 빅파이브와의 관련에서는 성실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헌신도 강한 경향이 있다. 성실성이 높은 사람은 약속을 지키고 장기적인 목표를 위해 단기적인 유혹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호성이 높은 것도 관계 유지 행동을 촉진한다. 봐야 할 것은 헌신의 강도만이 아니라, 각자가 어떤 종류의 헌신으로 머물러 있는가다. 한쪽은 개인적 헌신으로 관계를 지탱하는데 다른 한쪽은 구조적 헌신만으로 머물러 있다면, 관계의 질에 대한 불만은 한쪽에만 쌓인다. 이 비대칭을 확인하려면 우선 자기 쪽에 대해 말로 정리해 보면 된다. 계속하고 싶어서 계속하는 것인지, 떠날 방도가 없어서 남아 있는 것인지. 답이 후자에 가깝다면 불만의 출처는 상대의 성격이 아니라 그 구조 쪽에 있다.